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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모급 장갑순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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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즈모급 장갑순양함은 일본 제국 해군의 장갑순양함으로, 1900년부터 1901년 사이에 취역한 이즈모와 이와테 2척으로 구성되었다. 이 함선은 20.3cm 주포와 15.2cm 부포, 어뢰 발사관 등을 탑재했으며, 24개의 보일러와 2개의 왕복 증기 기관을 통해 20.75kn의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러일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중일 전쟁 등 다양한 전쟁에 참전했으며, 특히 러일 전쟁에서 주요 역할을 수행했다. 이후 개수를 통해 무장이 변경되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 구레 공습으로 침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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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모급 장갑순양함 - [배(Ship)]에 관한 문서
함급 개요
함 종류장갑순양함
건조 회사암스트롱 휘트워스 (영국)
운영 국가일본 제국 해군
건조 기간1898–1901년
취역 기간1900–1945년
총 완공 함선 수2척
총 손실 함선 수2척
특징
전체 길이(전체 길이)
추진 방식2축, 2 x 3단 팽창 증기 엔진
동력24 x 벨빌식
항속 거리(에서)
승무원672명
무장
주포2 × 쌍열 포
부포14 × 단장 포
대공포12 × 단장 12 파운더 () 포
기타 화기8 × 단장 2.5 파운더 () 야마우치 포
어뢰 발사관4 × 어뢰 튜브
장갑
이미지
"이와테"의 엽서 (1905–1915년경)
함선 목록
자매함이즈모
이와테

2. 설계

이즈모급의 무장 및 장갑 배치도


선체는 평갑판형 선체로, 높은 건현을 가지고 있어 능파성이 좋았다. 함수에는 충각이 있었다. 주포는 ‘20.3cm 45구경포’를 연장 포탑에 장착, 1번 주포탑, 사령탑을 넣은 조타함교, 단각형 전방 마스트, 3개의 굴뚝과 양쪽의 소형 통풍통(총 10개), 함재정 창고, 보트 크레인 바닥을 겸하는 단각형 후방 마스트, 2번 주포탑 순서로 배치되었다. 15cm 40구경 단장포는 아사마급 장갑순양함처럼 양쪽에 7개씩(총 14문) 배치되었다. 대 수뢰정 무기로는 8cm 40구경 단장속사포 12문, 47mm 포 단장 8문이 있었고, 함수부의 수상 어뢰발사관은 폐지되었다.[1]

일본은 1894~95년 청일 전쟁 후 1896년 해군 확장 계획을 시작했다. 4척의 장갑순양함과 4척의 전함 건조 계획은 일본 자체 능력 부족으로 모두 외국 조선소에 발주해야 했다. 일본 제국 해군은 러시아 해군력에 대응하기 위해 전함 발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 예산 제약 속에 장갑순양함 수를 4척에서 6척으로 늘렸다. 이 수정 계획은 "6-6 함대"로 알려졌으며,[1] 청일 전쟁 배상금 3천만 파운드로 구매되었다.[2] ''이즈모''급은 통상 파괴나 식민지/무역로 방어 목적이 아닌, 함대 정찰선으로 전투 대형에 운용될 예정이었다.[3]

''이즈모''급 건조는 "6-6 함대"의 이전 아사마급 장갑순양함을 건조했던 영국 암스트롱 휘트워스(엘스윅)에 맡겨졌다.[4] 필립 와츠)가 설계를 맡아, 발전하는 보일러 기술을 이용, 원통형 보일러 대신 가벼운 벨빌 보일러를 사용, 절약된 무게로 갑판 보호를 늘리고 선체 구조를 개선했다. 보일러 수 증가로 굴뚝이 추가되어, 이전 함급과 구별되는 주요 특징이 되었다.[5]

2. 1. 특징

일본 제국 해군1896년 66함대정비계획에 따라 러일 전쟁 이전에 영국에 발주한 장갑순양함이다. 아사마급 장갑순양함의 개량형으로 필립 와츠가 설계했다.

외관상으로는 함수에 있던 45cm 수중 어뢰 발사관 1문을 줄이고 함수를 정형화했다. 기관은 원통형 보일러 12개 대신 프랑스에서 개발한 벨빌식 보일러 24개를 채택하여 굴뚝이 3개가 되었다. 최고 출력은 다소 줄었지만, 기관 무게를 약 300톤 정도 경량화하여 속력은 유지했다. 건조는 2척 모두 암스트롱 사 엘스윅 조선소에서 이루어졌다.

선체 형상은 전형적인 평갑판형 선체이며, 능파성을 좋게 하기 위해 높은 건현을 가지고 있고, 함수에는 여전히 충각이 붙어 있었다.

주포는 새롭게 설계한 ‘20.3cm 45구경포’를 타원형 원통 모양의 연장 포탑에 장착했다. 1번 주포탑, 사령탑을 넣은 조타함교, 단각형 전방 마스트,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3개의 굴뚝 양쪽에 소형 통풍통이 5개씩 총 10개가 설치되었다. 그 뒤에 함재정을 두는 창고, 보트 크레인의 바닥을 겸하는 단각형 후방 마스트, 2번 주포탑 순서로 배치되었다. 15cm 40구경 단장포는 아사마급 장갑순양함과 마찬가지로 양쪽에 7개씩 총 14문이 배치되었다.

그 밖에 대 수뢰정 무기로 함수와 함미의 상갑판에 8cm 40구경 단장속사포가 12문, 47mm 포 단장 8문이 있었다. 함수부의 수상 어뢰발사관이 없어졌기 때문에 함수 모양은 개선되었다.

1904년 ''제인 해군 연감''에 실린 이즈모급의 좌현도, 측면도 및 반 단면도


이즈모급 군함은 전장(길이)이 132.28m였고, 수선 간 길이는 121.92m였다. 선폭은 20.94m였으며, 평균 흘수선은 7.21m에서 7.26m였다. 이 군함의 기준 배수량은 9423ton에서 9503ton였고, 만재 배수량은 10235ton에서 10305ton였다. 메타센터 높이는 0.73m에서 0.88m였다.[6] 승무원은 장교와 사병을 포함하여 672명으로 구성되었다.[7]

이 군함에는 2개의 4기통 왕복 증기 기관이 장착되어 있었고, 각각 단일 프로펠러 샤프트를 구동했다.[8] 기관에 증기를 공급하기 위해 24개의 벨빌 보일러가 사용되었으며, 기관은 총 14500ihp의 출력을 냈다. 자매함들은 설계상 속도가 20.75kn였으며, 두 함선 모두 해상 시운전에서 최소 1kn 이상을 초과했으며, 출력은 15739ihp에서 16078ihp였다. 최대 1551ton의 석탄을 탑재했으며,[9] 속도 10kn으로 7000nmi를 항해할 수 있었다.[7]

3. 무장

이즈모급 장갑순양함은 암스트롱 사의 20.3cm 45구경포(주포), 엘스윅 병기 회사의 6인치 40구경포(부포)를 비롯하여, 대 수뢰정 무기로 비커스사의 8cm 40구경 단장속사포, 47mm 단장포, 어뢰발사관 등 다양한 무장을 갖추고 있었다.

1924년, 1930년대 초, 1945년에는 무장 구성에 변화가 있었다.

3. 1. 주포

이즈모급 장갑순양함의 주포는 암스트롱 사가 새로 설계한 20.3cm 45구경포이다. 이 포는 타원형 원통 모양의 연장 포탑에 탑재되었으며, 좌우 150도, 앙각 30도, 부각 5도로 움직일 수 있었다. 무게 113kg의 포탄을 분당 2발의 속도로 발사할 수 있었고, 최대 사거리는 18000m였다.[10] 포구 속도는 760m/s였다.[11] 각 포탑은 65발의 포탄을 수용할 수 있었지만, 포탑 바닥과 선체의 갑판에 있는 문을 통해서만 재장전이 가능했으며, 이 문을 통해 포탑 내의 전동 윈치가 선체 깊숙한 곳의 탄약고에서 포탄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10] 주포는 수동으로 장전되었으며 분당 약 1.2발의 발사 속도를 가졌다.[10]

모든 "육·육 함대" 장갑순양함에 사용된 8인치 주포 포탑의 단면


1945년에 20.3cm 주포 4문이 철거되었다.

3. 2. 부포

6인치 주포를 운용하는 승무원들


부무장은 엘스윅 병기 회사 "패턴 Z" 속사포 40구경 6인치포 14문으로 구성되었다. 이 중 4문을 제외한 나머지는 주 갑판과 상부 갑판의 장갑 포곽에 장착되었으며, 상부 갑판의 주포는 포방패로 보호받았다. 이 포들은 약 45.36kg 철갑탄을 2300ft/s의 포구 속도로 발사했다.[12] 또한 40구경 QF 12파운더 (약 7.62cm) 12-cwt 포[13] 12문과 2.5파운더 (약 3.81cm) 야마우치 포 8문을 어뢰정에 대한 근거리 방어용으로 장비했다. 12파운더 포는 3인치, 약 5.67kg의 포탄을 2359ft/s의 포구 속도로 발사했다.[14]

상하이에서의 근대화 개수 후의 "이즈모". 함교 바로 아래 양쪽에 비식 40mm 연장 기관포좌가 신설되었고, 수상기 운용을 위해 후장 기부에 크레인이 설치되었다.


부포는 "1895년형 15.2 cm(40구경)포"를 채용했으며, 이 포는 매분 5발을 발사할 수 있었지만, 숙련된 병사는 7발까지 가능했다. 45.4kg의 포탄을 앙각 20도, 부각 5도에서 최대 9,140m까지 발사할 수 있었다.

그 외에 비커스사(Vickers)의 "1894년형 8cm(40구경)포" 단장 포가 12기, 47mm 단장포 8기, 45.7cm 어뢰 발사관을 현측부 수중에 4기 장비했다.

취역 후 1924년에 8cm 속사포 4기, 47mm 단장포 4기, 45cm 어뢰 발사관 2문을 줄이고, 대공 화기로서 "삼년식 8cm(40구경) 단장 고각포"를 1기 탑재했다. 1930년대 초 기관 교체 시 15.2cm 속사포 6문, 8cm 속사포 4문, 47mm 단장포 4문, 45cm 어뢰 발사관 2문이 철거되었다. 이후 "이와테"도 삼년식 8cm 단장 고각포 2기를 탑재했다.

1945년에는 15.2cm 부포 4문을 철거하고, 대공 화기로서 "89식 12.7cm(40구경) 고각포" 연장 포가 2기, "96식 25mm 기관총"을 "이즈모"는 삼연장 2기, 연장 포가 2기, 단장 포가 4기, "이와테"는 연장 포가 2기, 단장 포가 3기, 13.2mm 단장 기총 2정을 탑재했다.

3. 3. 기타 무장

대 수뢰정 무기로 함수와 함미의 상갑판에 8cm 40구경 단장속사포 12문, 47mm 단장포 8문이 장착되었고, 함수부의 수상 어뢰발사관은 없어졌다.[15] 현측부 수중에는 45.7cm 어뢰발사관 4문이 설치되었다.

이 외에도 비커스사의 ‘1894년형 8cm 40구경포’ 단장포가 12문, 47mm 단장포 8문이 장비되었다.

1924년에는 8cm 속사포 4문, 47mm 단장포 4문, 45cm 어뢰발사관 2문이 철거되고, 대공 화기로 삼년식 8cm 40구경 단장고각포 1문이 추가되었다. 1930년대 초 기관 교체 시에는 15.2cm 속사포 6문, 8cm 속사포 4문, 47mm 단장포 4문, 45cm 어뢰발사관 2문이 철거되었다. 이후 ‘이와테’에도 삼년식 8cm 단장고각포 2문이 탑재되었다.

1945년에는 20.3cm 주포 4문과 15.2cm 부포 4문이 철거되고, 대공 화기로 89식 12.7cm(40구경) 고각포 연장포가 2기, 96식 25mm 기관총이 "이즈모"는 3연장 2기, 연장포가 2기, 단장포가 4기, "이와테"는 연장포가 2기, 단장포가 3기, 13.2mm 단장 기총 2정이 탑재되었다.

3. 4. 개수를 통한 무장 변화

이즈모급 장갑순양함의 주포는 암스트롱 사의 신형 ‘20.3cm 45구경포’였다. 이 포는 타원형 포탑에 2문씩 장착되었으며, 좌우 150도, 앙각 30도, 부각 5도로 움직일 수 있었다. 무게 113kg의 포탄을 분당 2발, 최대 사거리 18,000m로 발사할 수 있었다.[10][11]

부포는 ‘1895년형 15.2cm 40구경포’로, 분당 5발(숙련병은 7발)을 발사할 수 있었다. 45.4kg 포탄을 앙각 20도, 부각 5도에서 최대 9,140m까지 발사 가능했다.[12]

그 외에 빗커스 사의 ‘1894년형 8cm 40구경포’ 12문, 47mm 단장포 8문, 45.7cm 어뢰발사관 4문을 장착했다.

1924년, 8cm 속사포 4문, 47mm 단장포 4문, 45cm 어뢰발사관 2문을 줄이고, ‘삼년식 8cm 40구경 단장고각포’ 1문을 추가했다. 1930년대 초 기관 교체 시 15.2cm 속사포 6문, 8cm 속사포 4문, 47mm 단장포 4문, 45cm 어뢰발사관 2문이 철거되었다. 이후 ‘이와테’도 삼년식 8cm 단장고각포 2기를 탑재했다.

1945년에는 20.3cm 주포 4문과 15.2cm 부포 4문을 철거하고, 대공 화기로 ‘89식 12.7cm 40구경 고각포’ 2문(2연장), ‘96식 25mm 기관총’(이즈모: 3연장 2기, 2연장 2기, 단장 4기; 이와테: 2연장 2기, 단장 3기), 13.2mm 단장 기총 2정을 탑재했다.

4. 기관

이즈모급 장갑순양함은 일본 제국 해군1896년 66함대정비계획에 따라 영국에 발주한 함선이다. 아사마급 장갑순양함의 개량형으로, 필립 와츠가 설계를 맡았다. 초기에는 프랑스에서 개발된 벨빌식 수관 보일러 24기를 채택하여 3개의 굴뚝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기존의 원형 캔 12개, 굴뚝 2개에서 변화된 것이다. 최고 출력은 다소 감소했지만, 기관 무게를 약 300톤 경량화하여 속력은 유지할 수 있었다.

이후 이와테는 1931년에, 이즈모는 1935년에 노후된 보일러를 야로식 중유, 석탄 혼소 수관 보일러 6개로 교체했다. 이에 따라 속력은 16노트로 떨어졌지만, 신뢰성은 상승했다.

4. 1. 초기 기관

이즈모급은 일본 제국 해군1896년 66함대정비계획의 일환으로 러일 전쟁 이전에 영국에 발주한 함선이다. 아사마급 장갑순양함의 개량형으로, 필립 와츠가 설계를 맡았다. 초기 기관은 프랑스에서 개발된 벨빌식 수관 보일러 24기를 채택하여 3개의 굴뚝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기존의 원형 캔 12개, 굴뚝 2개에서 변화된 것이다. 최고 출력은 다소 감소했지만, 기관 무게를 약 300톤 경량화하여 속력은 유지할 수 있었다.[5]

준공 당시의 이와테.


이 군함에는 2개의 4기통 왕복 증기 기관이 장착되어 각각 단일 프로펠러 샤프트를 구동했다.[8] 기관에 증기를 공급하기 위해 24개의 벨빌 보일러가 사용되었으며, 기관은 총 14500ihp의 출력을 냈다. 설계상 속도는 20.75kn였으며, 해상 시운전에서 15739ihp에서 16078ihp의 출력을 기록하며 설계 속도를 상회했다.[9] 최대 1551ton의 석탄을 탑재했으며,[9] 10kn 속도로 7000nmi를 항해할 수 있었다.[7]

이와테는 1931년, 이즈모는 1935년에 노후된 보일러를 야로우식 중유·석탄 혼소 수관 보일러 6기로 교체했다. 이로 인해 속력은 16노트로 저하되었지만 신뢰성은 향상되었다.

4. 2. 기관 개수

베르베르식 석탄 전소 수관 보일러 24기, 강직형 삼단 팽창식 4기통 왕복기관 2기로 2축 추진으로, 아사마형에 비해 기관 출력은 작았다. 출력 14,500마력에 20.8노트 속도를 낼 수 있었다. 항속 거리는 석탄 1,402톤을 탑재한 상태에서 10노트 속도로 7,000해리를 항해할 수 있었다.[28]

이후 ‘이와테’는 1931년에, ‘이즈모’는 1935년에 노후된 보일러를 야로식 중유, 석탄 혼소 수관 보일러 6개로 교체했다. 이에 따라 속력은 16노트로 떨어졌지만, 신뢰성은 상승했다.[28]

5. 방호

1896년 일본 제국 해군이 6·6함대 정비 계획에 따라 러일 전쟁 전에 영국에 발주한 장갑순양함인 이즈모급은 아사마급의 개량형으로, 필립 와츠에 의해 설계되었다. 프랑스가 개발한 벨빌식 24기로 기관이 변경되어 3개의 굴뚝을 가지게 되었으며, 기관 중량 경량화로 속력은 유지되었다. 2척 모두 암스트롱사 엘지크 조선소에서 건조되었다.

방어는 동시대 영국 전함과 유사했고, 수선부에 89mm에서 178mm에 이르는 두꺼운 장갑이 설치되었다. 장갑 재질은 니켈 강판에서 대탄 능력이 높은 크루프식 침탄 강판으로 채택되었다.

5. 1. 주요 방호 구역

이즈모급의 방어는 동시대 영국 전함과 유사했고, 아사마급과 마찬가지로 수선부에 89mm에서 178mm에 이르는 두꺼운 장갑이 설치되었다. 같은 시기 영국 해군의 크레시급 장갑순양함의 주포가 23.4cm 캐논포였고 수선부가 152mm였던 것에 비해 이즈모급은 중방어였다. 장갑 재질은 니켈 강판에서 대탄 능력이 높은 크루프식 침탄 강판으로 채택하여, 현측 장갑 벨트의 길이를 줄이고 갑판 장갑의 두께를 늘렸다.[16]

"6-6 함대" 장갑순양함은 모두 약간의 차이를 제외하고 동일한 장갑 설계를 사용했는데, 그중 4척의 후기 함선은 모두 크루프 강철 장갑을 사용했다. 수선 벨트는 함선의 전체 길이를 따라 뻗어 있었으며, 중앙부에서 178mm에서 함미와 함수에서 89mm로 두께가 달랐다. 벨트의 가장 두꺼운 부분은 함선의 중앙부를 83.87m 길이로 덮고 있었다. 높이는 2.13m였으며, 이 중 1.33m에서 1.39m가 일반적으로 수면 아래에 있었다. 벨트 장갑의 상부 스트레이크는 두께가 127mm였으며 수선 벨트의 상단에서 주 갑판까지 뻗어 있었다. 이는 전방에서 후방 바벳까지 51.18m에서 53.31m 뻗어 있었다. 이즈모급은 중앙 장갑 시타델의 끝을 막는 127mm 경사 장갑 벌크헤드를 가지고 있었다.[16]

바벳, 포탑 및 캐세이의 전면은 모두 152.4mm 두께였으며 캐세이의 측면과 후면은 51mm의 장갑으로 보호되었다. 갑판은 63mm 두께였으며 사령탑을 보호하는 장갑은 두께가 356mm였다.[17] 이들 함선은 이중 바닥에 30개의 함선 방수 구획을 가지고 있었고, 바닥과 상부 갑판 사이에 136개 또는 137개의 추가 구획을 가지고 있었다.[18]

6. 동형함

이즈모급 장갑순양함의 동형함은 2척이 건조되었다.

건조 데이터
함선건조사기공진수완공최후
이즈모암스트롱 휘트워스 (엘스윅)[9]1898년 5월 14일[9]1899년 9월 19일[9]1900년 9월 25일[19]1945년 7월 28일 침몰; 선체 해체, 1947년[30]
이와테1898년 11월 11일[9]1900년 3월 29일[9]1901년 3월 18일[19]1945년 7월 25일 침몰; 해체, 1946년–1947년[38]



두 함선 모두 영국암스트롱 휘트워스 (엘스윅)에서 건조되었다.[4]

7. 운용

이즈모급 장갑순양함은 1896년 일본 제국 해군의 66함대정비계획에 따라 러일 전쟁 이전에 영국에 발주되었다. 아사마급 장갑순양함의 개량형으로, 필립 와츠가 설계했다. 외관상 함수 수중 어뢰발사관이 줄고 함수가 정형되었으며, 기관은 프랑스제 베르베르 식 24개로 변경되어 굴뚝이 3개가 되었다. 기관 무게 경량화로 속력은 유지되었다. 2척 모두 암스트롱 사 엘스윅 조선소에서 건조되었다.

일본은 1894년~1895년 청일 전쟁 이후 1896년 해군 확장 계획을 시작했다. 4척의 장갑순양함과 4척의 전함을 외국 조선소에 발주해야 했다. 러시아 제국 해군에 대항하기 위해 4척에서 6척으로 장갑순양함의 수를 늘렸다. 수정된 계획은 "6-6 함대"로 알려졌으며,[1] 청일 전쟁 배상금으로 구매되었다.[2] 이즈모급은 함대 정찰선으로 전투 대형에서 운용될 예정이었다.[3]

건조는 암스트롱 휘트워스 (엘스윅)에 맡겨졌고,[4] Philip Watts)가 설계했다. 벨빌 보일러를 사용하여 갑판 두께를 늘리고 선체 구조를 개선했다. 보일러 수 증가로 굴뚝이 추가되어 이전 함급과 구별되었다.[5]

건조 데이터
함선건조사 [9]기공[9]진수[9]완공 [19]최후
scope="row"|암스트롱 휘트워스사, 엘스윅1898년 5월 14일1899년 9월 19일1900년 9월 25일1945년 7월 28일 침몰; 선체 해체, 1947년[30]
scope="row"|1898년 11월 11일1900년 3월 29일1901년 3월 18일1945년 7월 25일 침몰; 해체, 1946년–1947년[38]



1924년, 12파운더포 4문과 QF 2.5파운더포가 제거되고, 8 cm/40 3rd Year Type 대공포 1문이 추가되었다.[34] 1930~31년 개조에서 어뢰 발사관, 갑판의 6인치 주포와 포탑이 제거되고 12파운더포 4문만 탑재했다. ''이와테''는 보일러를 6개의 수관 보일러로 교체했지만, ''이즈모''는 1935년까지 교체하지 않았다.[34] 새 보일러로 엔진 출력이 7000ihp, 최고 속도가 16kn로 감소했다.[7]

1945년 초, 8인치 함포가 89식 양용포 4문으로 교체되고 남은 6인치 함포 4문이 제거되었다. 경(輕) 대공 무장은 25mm 96식 기관포와 13.2mm 호치키스 기관총이 추가되어 강화되었다.[39]

구레 공습 당시 공격을 받았지만 피격되지 않았다. 그러나 근접 폭격으로 침수가 발생했다. ''이와테''는 7월 25일 얕은 물에 침몰했고, ''이즈모''는 3일 후 전복되었다. 두 함선 모두 11월 20일에 해군 함정 목록에서 삭제되었고 잔해는 1946–47년에 해체되었다.[30][38]

7. 1. 러일 전쟁

러일 전쟁 기간 이즈모급 장갑순양함은 제2 함대 제2 사단의 기함으로 활약했다. 제2 사단장 미스 소타로 소장의 기함은 ''이와테''였고, 함대 사령관 가미무라 히코노조 중장의 기함은 ''이즈모''였다.[20] 1904년 2월 9일, 도고 헤이하치로 연합 함대가 포트 아서 바로 바깥에 정박해 있던 러시아 태평양 함대를 공격하면서 포트 아서 해전에 참전했다. 도고는 구축함의 기습 야간 공격이 성공적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러시아군은 기습에서 회복하여 공격에 대비했다. ''이와테''는 러시아군에 의해 다소 피해를 입었지만, ''이즈모''는 경미한 피해만 입었다.[21]

1905년 이전, 정박 중인 ''이와테''의 엽서


1904년 4월, 제2 사단은 블라디보스토크에 주둔한 러시아 장갑순양함을 견제하는 임무를 받았지만, 8월 13일까지 이를 수행하지 못했다. 당시 러시아 함대는 포트 아서에서 탈출하려는 함대와 합류하려 했다. 도고는 8월 10일 황해 해전에서 포트 아서 함대를 격파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온 러시아 함대는 울산 해전에서 제2 사단에 의해 요격되었다. 러시아 순양함 Рюрик|류릭ru의 조타 장치가 전투 초기에 손상되었고, 러시아군은 일본군이 이 함에 집중 포격을 가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결국 함을 포기해야 했다. 가미무라는 ''류릭''을 증원군에게 맡기고, ''이즈모''가 탄약을 거의 다 소모했다는 부정확한 보고에 따라 추격을 중단하기 전에 남은 두 척의 러시아 함을 잠시 추격했다. ''이즈모''는 20번 이상 피격되었지만, 20명 미만의 사망자나 부상자를 냈다. 반면, ''이와테''는 훨씬 적게 피격되었지만, 그 중 하나가 대규모 탄약 화재를 일으켜 수십 명의 사상자를 냈다.[22] 전투 후, 이 자매함은 재장비를 거쳐 다른 부대에 배정되어 북한으로 병력 수송을 호위했고, 기뢰가 블라디보스토크 앞바다에 설치되는 동안 엄호했으며, 1905년 중반 발트 함대의 러시아 함선들이 일본에 접근할 때까지 쓰가루 해협을 봉쇄했다.[23]

1904년 5월 27일 아침, 러시아 제2 및 제3 태평양 함대가 발견되었고,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은 함대에 출항을 명령했다. 이즈모와 이와테는 제2 전대에 합류했고, 카미무라의 함대는 그날 아침 늦게 초동 발견을 확인한 후 도고의 전함에 합류했다. 대부분의 일본 전함과 함께, 이 부대는 14시 10분에 러시아 전함 Ослябя|오슬랴뱌ru에 포격을 시작했고, 오슬랴뱌는 14시 50분에 대형에서 이탈하여 20분 후에 침몰했다. 이와테와 다른 몇몇 순양함이 비슷한 시기에 실패한 어뢰 공격을 격퇴한 후, 러시아 전함 Князь Суворов|크냐즈 수보로프ru가 15시 35분에 짙은 안개 속에서 나타났다. 카미무라의 함대는 5분간 교전한 후 다시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그날 늦게, 카미무라는 17시 30분경 러시아 순양함을 쫓았지만 실패했다. 그는 18시 03분경 추격을 포기했고 약 30분 후에 러시아 주력 전열과 마주쳤다. 그는 장거리에서 머물렀고, 그의 함대는 사격이 가능할 때 발포했으며, 19시 30분에 사격을 중단했다.[24]

1905년, 정박 중인 이즈모의 일본 엽서


다음 날 아침, 생존한 러시아 함선이 발견되었고, 일본 함선은 사격을 시작했으며 러시아 함선이 효과적으로 반격할 수 없는 사정거리 밖에서 머물렀다. 따라서 니콜라이 네보가토프 제독은 반격을 할 수도 없고 거리를 좁힐 수도 없었기 때문에 함선을 항복시키기로 결정했다.[25] 네보가토프의 항복 이후, 연안방어함 Адмирал Ушаков|아드미랄 우샤코프ru가 네보가토프의 함선에서 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고, 이와테와 장갑순양함 八雲|야쿠모일본어가 추격했다. 일본 함선은 사정거리에 들어서자 러시아 측에 항복을 요구했지만, 함장은 거부했다. 아드미랄 우샤코프는 일본 순양함을 자신의 함포 사정거리에 넣기 위해 거리를 좁히려 했지만, 일본 함선은 거리를 유지할 만큼 빨랐고 러시아 함선은 그들을 맞출 수 없었다. 약 30분 후, 아드미랄 우샤코프는 심하게 손상되어 작전 능력을 상실했고, 함장은 승무원에게 퇴함을 명령하고 자침 장치를 폭발시켰다.[25] 이와테와 이즈모는 전투 중에 여러 번 피탄되었지만, 어느 쪽도 심각한 피해를 입지 않았고 사상자도 경미했다.[26] 전투 후, 이 부대는 전쟁이 끝나기 전인 7월과 8월에 북동부 한국에서 상륙작전을 지원했다.[27]

7. 2. 제1차 세계 대전

이즈모|いずも일본어멕시코 혁명 당시 일본의 이익과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멕시코 서해안을 순찰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며[28], 1914년 8월 23일 일본이 독일 제국에 선전 포고를 했을 때도 그곳에 있었다. 그 후 독일의 통상 파괴를 수색하고 북아메리카와 중앙아메리카 서부 해안에서 연합국 선박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았다. 1915년 초, 바하 캘리포니아 근처 암초에 좌초된 장갑순양함을 지원했다.[29] 1917년, 이즈모|いずも일본어지중해에 배치된 일본 함대의 기함이 되었다. 전쟁 후, 이즈모는 몇 척의 전 독일 잠수함을 인수하기 위해 영국으로 항해했고, 그들을 일본으로 가는 도중까지 호위했다.[30]

이와테|いわて일본어는 전쟁에서 작은 역할을 했으며, 칭다오 전투[31]에 참가한 후, 독일의 통상 파괴를 수색하기 위해 남양 군도로 항해했다.[32] 이와테는 1916년에 해군 사관학교 해군 생도들을 위한 첫 번째 훈련 항해를 시작했으며, 이 임무는 1939년 말까지 계속되었다. 이즈모|いずも일본어1920년대에 자체 훈련 항해를 시작했다.[33]

7. 3. 전간기 및 중일전쟁

멕시코 혁명 당시 일본의 이익과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멕시코 서해안을 순찰하라는 명령을 받은 ''이즈모''는 1914년 8월 23일 일본이 독일 제국에 선전 포고를 했을 때도 그곳에 있었다. 그 후 독일의 통상 파괴를 수색하고 북아메리카와 중앙아메리카 서부 해안에서 연합국 선박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 배는 1915년 초, 바하 캘리포니아 근처 암초에 좌초된 장갑순양함을 지원했다.[29] 1917년, ''이즈모''는 지중해에 배치된 일본 함대의 기함이 되었다. 전쟁 후, 그녀는 몇 척의 전 독일 잠수함을 인수하기 위해 영국으로 항해했고, 그들을 일본으로 가는 도중까지 호위했다.[30]

''이와테''는 전쟁에서 작은 역할을 했으며, 칭다오 전투[31]에 참가한 후, 독일의 통상 파괴를 수색하기 위해 남양 군도로 항해했다.[32] 이 배는 1916년에 해군 사관학교 해군 생도들을 위한 첫 번째 훈련 항해를 시작했으며, 이 임무는 1939년 말까지 지속되었다. ''이즈모''는 1920년대에 자체 훈련 항해를 시작했다.[33]

1925년 2월, 캐나다 밴쿠버의 버라드 만에 정박한 ''이즈모''


1924년, 이 배의 12파운더포 4문과 QF 2.5파운더포는 모두 제거되었고, 40구경 8 cm/40 3rd Year Type 대공포 1문이 추가되었다.[34] 이 포는 최대 +75도의 앙각을 가졌으며, 5.67kg의 3인치 포탄을 680m/s의 포구 속도로 발사하여 최대 7200m의 높이에 도달할 수 있었다.[35] 1930~31년에 다시 개조되면서, 어뢰 발사관이 제거되었고, 갑판의 6인치 주포와 포탑이 모두 제거되었으며, 12파운더포 4문만 탑재했다. 그 당시, ''이와테''는 또한 보일러를 6개의 수관 보일러로 교체했지만, ''이즈모''는 1935년까지 보일러를 교체하지 않았다.[34] 새로운 보일러는 더 적은 증기를 생산하여 엔진 출력을 7000ihp로 제한하고 최고 속도를 16kn로 감소시켰다.[7]

1932년 상하이 황푸 강에 정박해 있는 ''이즈모''. 왼편에는 미국의 장갑순양함 가 정박해 있다.


1932년, 1·28 상하이 사변 당시 ''이즈모''는 일본이 점령한 중국을 수비하기 위해 재결성된 제3함대의 기함이 되었다. 2년 후, 사세보 해군 공창에서 수상기를 운용할 수 있도록 장비를 갖추었다.[30] 중일 전쟁 동안, 이 함은 1937년 중반의 상하이 전투에 참전하여 해안에 있는 일본군에게 함포 사격 지원을 제공했다.[36]

7. 4. 태평양 전쟁

1941년 12월 8일 태평양 전쟁이 시작될 때 ''이즈모''는 상하이에 있었다. ''이즈모''는 미국의 강가포를 나포하고 영국의 강가포 침몰을 도왔다.[30][37] 12월 31일, 이 순양함은 필리핀 전역 중 일본군을 지원하는 동안 링가옌 만에서 기뢰에 부딪혔다. 이 기간 동안 ''이와테''는 본국 해역에서 훈련함으로 계속 복무하고 있었다. 이즈모급 장갑순양함 2척은 1942년 7월 1일에 1급 순양함으로 잠시 재분류되었고,[30][38] 1943년에는 훈련함이 되었다. ''이즈모''는 그해 말 일본으로 돌아와 자매함 ''이와테''와 함께 해군 사관생도를 훈련시켰다.[39]

1945년 초, 이즈모급 2척은 8인치 함포가 2기의 쌍열 포좌에 89식 양용포 4문으로 교체되고 남은 6인치 함포 4문이 제거되면서 재무장되었다. 89식 함포는 수상 표적을 사격할 경우 14700m의 사정거리를 가졌으며, 최대 고도는 +90도의 고각에서 9440m였다. 최대 발사 속도는 분당 14발이었지만, 지속 발사 속도는 분당 약 8발이었다.[40] 이즈모급의 경(輕) 대공 무장은 9문(''이와테'')과 14문(''이즈모'')의 면허 생산 호치키스 25mm 96식 단일, 이중 및 삼중 포좌의 경(輕) 대공포와 2문의 13.2mm 호치키스 기관총 단일 포좌가 추가되어 크게 강화되었다.[39] 25mm 96식 기관포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일본의 표준 경(輕) 대공포였지만, 심각한 설계 결함으로 인해 효과가 거의 없는 무기가 되었다. 쌍열 및 삼중 포좌는 훈련 또는 고도에서 충분한 속도를 내지 못했고, 조준경은 빠른 표적을 처리할 수 없었으며, 총기는 과도한 진동을 보였으며, 탄창은 너무 작았고, 마지막으로 총은 과도한 총구 폭발을 일으켰다. 이 무기의 최대 사정거리는 7500m였지만, 유효 사정거리는 약 1500m 에서 3000m에 불과했다.[41]

이즈모급 2척은 1945년 7월 미국의 공습 구레 공습 당시 공격을 받았지만 피격되지 않았다. 그러나 근접 폭격의 충격파로 인해 두 함선 모두 광범위한 침수가 발생했다. ''이와테''는 7월 25일 얕은 물에서 침몰했고, ''이즈모''는 3일 후 전복되었다. 두 함선 모두 11월 20일에 해군 함정 목록에서 삭제되었고 잔해는 1946–47년에 인양되어 해체되었다.[30][38]

참조

[1] 서적 Evans & Peattie
[2] 서적 Brook 1999
[3] 서적 Milanovich
[4] 서적 Brook 1999
[5] 서적 Milanovich
[6] 서적 Milanovich
[7] 서적 Jentschura, Jung & Mickel
[8] 서적 Milanovich
[9] 서적 Brook 1999
[10] 서적 Milanovich
[11] 서적 Milanovich
[12] 서적 Friedman
[12] 서적 Milanovich
[13] 문서 "Cwt is the abbreviation for hundredweight, 12 cwt referring to the weight of the gun."
[14] 서적 Friedman
[15] 서적 Milanovich
[16] 서적 Milanovich
[17] 서적 Chesneau & Kolesnik
[18] 서적 Milanovich
[19] 서적 Milanovich
[20] 서적 Kowner
[21] 서적 Forczyk
[22] 서적 Brook 2000
[23] 서적 Corbett 1994
[24] 서적 Campbell 1978
[25] 서적 Corbett 1994
[26] 서적 Brook 1999
[26] 서적 Campbell 1978
[27] 서적 Corbett
[28] 뉴스 Japanese Cruiser Sent to Mexico http://cdnc.ucr.edu/[...] California Digital Newspaper Collection 1913-11-12
[29] 문서 Estes
[30] 문서 Hackett & Kingsepp, ''Izumo''
[31] 서적 Burdick
[32] 서적 Corbett 1938
[33] 서적 Lacroix & Wells
[34] 서적 Chesneau
[35] 서적 Campbell 1985
[36] 뉴스 Japanese Consulate in Ruins http://nla.gov.au/nl[...] Trove 2015-04-25
[37] 서적
[38] 서적 Iwate
[39] 서적
[40] 서적 1985
[41] 서적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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